정부가 1999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이후 26년 동안 유지해 온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전격 폐지한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발표한 제3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을 통해, 오는 2026년부터 단계적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없애 복지 사각지대를 완전히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가난해도 가족(부모나 자녀)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의 의료비 지원을 받지 못했던 수많은 '비수급 빈곤층'에게는 그야말로 혁명적인 변화다. 특히 가족과 연락이 끊겼음에도 서류상 가족이라는 이유로 혜택을 못 받던 이들에게 이번 조치는 생존권 보장과 직결된다.

◆왜 이제서야? '부양은 국가의 책임'이라는 사회적 합의

부양의무자 기준은 그동안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가족의 몫"이라는 전통적 효 사상을 기반으로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핵가족화와 가족 해체가 가속화되면서 이 기준은 현실과 동떨어진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미 생계급여(2021년)와 주거급여(2018년)에서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었으나, 예산 규모가 가장 큰 의료급여는 마지막까지 규제가 남아 있었다. 정부는 이번 결정을 통해 "가난에 대한 부양은 이제 가족이 아닌 국가의 책임"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마침표를 찍은 셈이다.

◆누가, 어떤 혜택을 받나? 5만 명 이상 신규 수급 예상

이번 조치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이들은 소득과 재산은 수급자 기준에 부합하지만, 자녀 등 부양의무자의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 혜택에서 제외됐던 가구들이다.

·기존: 본인이 아파도 자녀가 돈을 벌면 의료급여 수급 불가

·변경: 부양의무자의 소득·재산과 상관없이 본인의 경제적 형편만 고려해 의료비 지원

·기대 효과: 약 5만 명 이상의 빈곤층이 새롭게 의료급여 혜택을 받을 것으로 보이며, 중증 환자가 있는 저소득 가구의 의료비 파산 위험이 획기적으로 낮아질 전망

◆우려되는 점: 천문학적 예산과 도덕적 해이 방지

물론 과제도 남아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예산이다. 의료급여는 한 번 수급자로 지정되면 국가가 병원비의 대부분을 부담하기 때문에, 기준 폐지에 따라 필요한 추가 재정이 매년 수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재산이 많은 부모가 자식에게 자산을 증여한 뒤 의료급여를 신청하는 등의 '도덕적 해이'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도 숙제다. 정부는 부양의무자가 연 소득 1억 원 또는 재산 9억 원을 초과하는 고소득·자산가인 경우에는 여전히 부양의무자 기준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복지국가로 가는 마지막 퍼즐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대한민국 복지 제도의 패러다임을 '가족 복지'에서 '개인 복지'로 바꾸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병원비가 무서워 아파도 참아야 했던 이들에게 26년 만에 국가가 내민 손길은 단순한 금전적 지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유튜브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번 정책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예산 확보와 더불어 의료급여 수가 체계 개편, 불필요한 장기 입원 방지 등 관리 효율화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2026년, 대한민국은 진정한 의미의 보편적 복지 국가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