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미국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여권뿐만 아니라 자신의 SNS 계정부터 관리해야 할지도 모른다.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이 전자여행허가(ESTA) 제도를 통해 입국하려는 외국인들에 대한 심사를 대폭 강화하는 새로운 규정안을 발표하며 논란이 일고 있다.

현지 시각으로 지난 10일 공개된 규정안의 핵심은 ‘디지털 저인망식 검사’다. 미국 방문을 원하는 외국인은 ESTA 신청 시 최근 5년간 사용한 소셜미디어(SNS) 내역을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 단순 인적 사항 넘어 ‘사상 검증’까지?

ESTA는 한국처럼 미국과 비자면제프로그램을 체결한 국가의 국민이 최대 90일까지 미국에 머물 수 있도록 돕는 간편 허가 제도다. 지금까지는 이름, 주소, 연락처 등 기본적인 정보만 입력하면 큰 문제 없이 승인이 났다. 하지만 이번 규정안이 통과되면 요구 데이터의 수준이 완전히 달라진다.

·SNS 기록: 최근 5년간 활동한 모든 계정 내역 제출 의무화

·개인 정보 확장: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는 물론 상세한 가족 정보 포함

·생체 정보: 지문, 홍채 등 생체 데이터와 본인 확인용 ‘셀카’ 사진 요구 가능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단순한 보안 강화를 넘어 개인의 사상과 정치적 입장을 확인하려는 ‘사상 검증’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에 비판적인 게시물을 올린 외국인의 비자가 취소되거나 유학생들의 SNS를 검열해 논란이 된 사례가 적지 않다.

◆ “표현의 자유 침해” vs “국가 안보 우선”

미국 안팎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개인의 사생활을 과도하게 침해할 뿐만 아니라, 미국이 강조해 온 ‘자유’의 가치를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이민변호사협회 측은 성명을 통해 “이번 결정은 개인의 여행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사람들이 스스로를 끊임없이 검열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이러한 조치가 결국 미국의 관광 산업과 비즈니스 환경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미국의 약속이 허울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던지는 꼴”이라며 이번 규정안이 가져올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 길어지는 대기 시간, 복잡해지는 입국 절차

규정안이 최종 통과되면 CBP는 몇 주에서 몇 달에 걸쳐 변경 사항을 적용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입국 허가를 받기 위한 대기 시간이 기존보다 훨씬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신청자의 SNS와 개인 정보를 일일이 대조하고 검토하는 과정에서 병목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여행의 ‘필수 관문’이었던 ESTA가 이제는 가장 까다로운 ‘검문소’가 될 전망이다. 자유로운 여행을 꿈꾸던 관광객들에게 미국의 이번 조치는 거대한 장벽으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