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디지털 심장이 멎었다. 지난 26일 밤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에서 발생한 화재는 단순한 시설 화재가 아니었다. 행정, 민원, 우편, 금융 등 전 분야를 아우르는 정부 업무시스템 647개를 일순간 마비시키며 '디지털 국가'의 민낯을 드러냈다. 국민 생활과 직결된 서비스가 줄줄이 멈춰 선 초유의 사태. 이는 우연한 재난이 아니라, 위험 요소를 방치하고 재난 복구 체계를 외면한 시스템 불감증이 초래한 인재(人災)였다.
국정자원은 각 부처의 전산 시스템과 서버,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하는 정부의 핵심 데이터센터다. 이곳이 멈췄다는 것은 국가 행정의 뇌 기능이 정지했다는 의미와 같다. 이번 사태의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배경에는 두 가지 치명적인 설계 오류가 있었다.
첫째, 폭발 위험 물질과 핵심 장비의 위험한 동거다. 불은 전산실에서 리튬이온 배터리를 지하로 옮기는 작업 중 발생했다. 화재에 취약한 리튬이온 배터리와 정부 전산 시스템의 심장부인 서버들이 촘촘하게 한 공간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다. 화재에 취약한 물질과 전소되면 안 될 국가 핵심 시스템을 함께 두는 안일함이 전산 장비 740대와 배터리 384대 전소라는 막대한 피해를 불렀다. 위험 관리에 대한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은 결과다.
둘째, '무늬만 이중화'였던 허술한 백업 체계다. 시스템 마비가 길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전산망 이중화(백업) 체계의 미비함 때문이다. 이상적인 이중화란, 한 센터가 멈추면 다른 센터가 쌍둥이처럼 즉시 모든 서비스를 이어받아 운영을 지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전 본원과 광주 센터 간에 갖춰진 이중화 체계는 단순한 데이터 백업 수준에 그쳤다. 핵심 서버가 타버리면 즉시 시스템을 가동할 수 있는 운영 체제 백업 기능은 사실상 전무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센터 한 곳에 불이 났다고 모든 것이 멈출 수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재난 시나리오조차 대비하지 못한 것이다.
이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다. 불과 몇 년 전, 정부는 민간 플랫폼 기업(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로 서비스 마비가 일어났을 때 '데이터센터 간 이중화 미비'를 들어 강력하게 질책했다. 그러나 정작 국민의 삶에 훨씬 더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정부 전산망은 그들이 비판했던 민간보다도 더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2023년 행정 전산망 오류 당시 "3시간 안에 복구하겠다"던 약속은 이번에 허언이 되었다. 공무원들이 쓰는 행정 전산망부터 각종 증명서 발급, 심지어 화장시설 예약까지 국민의 크고 작은 일상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부 시스템이 이처럼 무방비 상태였다는 사실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더 큰 아이러니는 미완의 대책이다. 정부는 이미 2008년부터 대전·광주·대구센터의 기능이 동시에 마비될 상황을 대비해 화생방·내진 등 특수시설을 갖춘 네 번째 공주 국정자원 센터 건립을 계획했다. 하지만 예산과 사업 진행의 지연으로 2023년에야 건물을 완공했고, 현재까지도 운영 시스템 백업 기능은 갖추지 못한 채 데이터 백업만 하는 '창고' 역할에 머물러 있다. 만약 공주 센터가 계획대로 완전히 구축되어 운영되고 있었다면, 이번 대전 화재는 지금과 같은 국가적 재앙으로 번지지 않았을 것이다. 15년간 끌어온 숙제가 결정적인 순간에 발목을 잡은 셈이다.
현재 정부는 국민 생활 관련 서비스를 우선 복구하며 사태 진정에 나서고 있지만, 시스템을 완전히 재가동하는 데는 추석 연휴를 넘겨 최대 2주까지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는 복구가 단순한 전원 재연결이 아닌, 시스템의 전면적인 재건을 의미한다는 방증이다. 이번 사태는 디지털 전환을 외치던 대한민국이 그 기반을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해 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단순한 복구를 넘어, 데이터센터의 설계, 배터리 관리, 그리고 재난 시 완벽한 이중화를 보장하는 근본적인 시스템 개편이 없다면, '디지털 강국'은 언제든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정부는 이제 과거의 립서비스 대신, 재난 복구 약속 시한을 3시간에서 0초로 단축할 수 있는 진정한 디지털 국가 비상대응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