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흔하고 안전하다고 여겨지던 해열진통제가 일순간 공포의 대상으로 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임신 중 타이레놀(아세트아미노펜) 복용이 태아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 위험을 높인다고 주장하며 사용 제한을 강력히 권고한 것이 발단이다. 이 한마디는 전 세계 의료계와 학계를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몰아넣었다. 국민적 신뢰도가 높은 정치적 권위가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의학적 합의를 단숨에 흔들어버린 상징적인 사건이다.

타이레놀의 주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은 임산부가 발열을 호소할 때 의사들이 처방하는 가장 안전한 약물로 여겨져 왔다. 발열은 유산이나 태아 기형 등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아세트아미노펜은 고열을 치료하는 거의 유일한 방패였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근거로 "입증되지 않은 학설" 수준에 머물러 있는 주장들을 끌어와 FDA까지 움직여 위험성을 의사들에게 통보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는 과학적 논의의 장을 벗어나, 정치적 영향력이 대중의 건강 불안감을 극대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당연하게도 학계와 의료계는 즉각 반발했다. 미국 산부인과 학회와 영국 왕립 산부인과학회 등 권위 있는 기관들은 "타이레놀은 임신부에게 가장 먼저 권고되는 약물"이라며 안전성을 재차 강조했다. 국내 전문가들 역시 "정확한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으며, 오히려 치료하지 않은 고열이 더 위험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타이레놀 제조사인 켄뷰(Kenvue)까지 나서 성명을 발표하고 "아세트아미노펜과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연관성을 뒷받침하는 신뢰할 만한 증거는 없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이러한 논란은 현대 사회에서 '정보의 힘'과 '권위의 함정'이 얼마나 위험하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수많은 논문과 임상 시험을 통해 검증된 의학적 사실조차,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정치인의 한마디 앞에서는 맥없이 흔들렸다. 대중은 불확실한 시대에 가장 믿을 만한 정보를 갈망하지만, 때로는 그 정보가 과학적 근거가 아닌 정치적 메시지에 의해 왜곡될 수 있음을 목격한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타이레놀 자체의 안전성 문제를 넘어선다. 공중 보건에 직결되는 민감한 사안일수록, 감정적이거나 정치적인 구호가 아닌 냉철한 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논의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의료계와 제약사의 적극적인 반박과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미 대중의 머릿속에 심어진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과학적 사실과 정치적 발언 사이에서 벌어진 이번 충돌은, 극도로 분열된 현대 사회에서 진실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고통스러운 사례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