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경제학상 발표를 끝으로 올해 노벨상 14명의 수상자 명단이 확정됐다. 다이너마이트 발명가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으로 시작된 이 권위 있는 상은 매년 생리의학, 물리학, 화학, 문학, 평화, 경제학 6개 분야에서 '인류에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을 기린다. 2025년의 노벨상은 면역체계의 경비병 '조절 T 세포'를 밝혀낸 생리의학상, 양자역학의 거시적 효과를 규명한 물리학상, '분자 레고'로 불리는 금속-유기 골격체(MOF)를 개발한 화학상 등 난치병, 기후위기 극복, 그리고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인류의 노력을 조명하며 인류가 당면한 과제들을 다시 한번 환기시켰다.
하지만 올해 노벨상 발표 이후 한국과 일본 과학기술계의 분위기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사카구치 시몬과 기타가와 스스무 교수가 각각 생리의학상과 화학상을 수상하면서 일본은 과학 분야에서 총 2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올해도 후보 명단에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세계 5위 수준의 연구개발(R&D) 투자 규모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투자했느냐'가 아닌 '어떻게 투자했느냐'의 문제라는 지적이 쏟아진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기초과학을 전략적으로 육성하며, 연구자들이 오랜 시간 한 주제를 파고들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성과가 단기적으로 나오지 않아도 지원이 끊기지 않는 시스템 덕분에, 수십 년 전 시작된 기초과학 연구가 노벨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단기 과제 중심의 연구 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논문·특허 수가 평가 기준이 되고, 과제가 끝나면 연구비도 끊기는 구조는 창의적인 연구를 어렵게 만든다. 정책 방향에 따라 연구 자원이 특정 분야에만 쏠리는 문제도 고질적으로 지적된다. 여기에 '정답만 찾는' 교육 방식까지 겹치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학자를 키워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패해도 계속 도전할 수 있는 생태계 마련과 함께, R&D 예산 중 기초과학 연구 비중 확대 및 긴 호흡의 지원이 절실하다. 실제로 장기적인 안목으로 기초과학과 혁신 연구에 투자해 온 구글에서 최근 2년 사이 다섯 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도 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편, 그동안 자신에게 노벨평화상을 줘야 한다고 주장해 온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꿈은 올해도 좌절됐다. 트럼프는 자신이 가자지구 전쟁 등 총 8개의 전쟁을 끝냈다고 강조했지만, '미국의 힘으로 약자를 억눌러 만든 평화'는 노벨평화상의 이념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외신 역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노벨평화상의 이념과 충돌한다고 지적했으며, 미국인 4명 중 3명은 트럼프가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답한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그러나 백악관은 노벨위원회 발표 이후 "노벨위원회가 평화보다 정치를 우선시한다"고 비난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반대로 평화상을 수상한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가 베네수엘라에 대한 트럼프의 군사개입을 촉구하는 등 극우적 정치 행보를 보였다는 비판도 제기되었으며, 마차도 본인 역시 수상 이후 "이 상을 트럼프에게 바친다"며 트럼프의 내년도 노벨평화상 수상 자격을 주장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노벨평화상이 정치적 논쟁의 한복판에 서게 된 것이다.
2025년 노벨상은 흥미로운 뒷이야기도 남겼다. 생리의학상 수상자 램즈델은 로키산맥 여행 중 휴대전화를 '비행기 모드'로 설정해 놓아 노벨위원회와 연락이 닿지 않는 해프닝이 있었다. 물리학상 수상자에 양자컴퓨터 연구진이 포함되면서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하는 현상이 벌어졌지만, 전문가들은 양자 기술의 상용화 장벽이 아직 높은 만큼 단기 급등세에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또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문학상 수상자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소설 판매량이 급증한 것은 지난해 한강 작가의 수상으로 이어진 '텍스트힙' 열풍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경제학상 수상자들은 기자회견에서 트럼프의 관세 전쟁을 '혁신의 장애물'이라 비판하고, 한국의 경제 성장 걸림돌로 심각한 저출생 문제를 지적하는 한편,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은 거품이라는 입장을 밝히는 등 사회 전반에 걸친 통찰을 제시하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