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릴 적 어머니가 사주신 뒤 지금까지 내 책장에 꽂혀있는 오래된 명작 소설 한 권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소설의 제목은 “세드릭 이야기”다.
이 소설은 신데렐라 이야기를 다룬 현대 소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잡지 연재소설이었던 이 이야기는 레지널드 버치가 초판 삽화를 맡아 1886년 책으로 출간했다. 평범한 미국 시민으로 살던 세드릭이 영국의 전통 있는 백작 가문의 후계자가 되기까지의 스토리가 담긴 ‘세드릭 이야기’ 는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세드릭의 아버지 에롤 대위가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에롤 대위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 여자와 결혼해 아버지인 도린코트 백작의 눈 밖에 나 있었다. 어머니와 단둘이 살며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세드릭은 자신이 도린코트 백작 가문의 후계자가 된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다.
변호사 허비셤씨는 백작이 얼마나 대단한 직위인지 알려주지만 정작 세드릭은 할아버지가 보내준 돈으로 다른 사람을 도우며 기뻐하느라 바빴다. 그렇게 영국으로 가는 배에 탑승하게 된 세드릭은 귀엽고 다정한 성품으로 배에 탄 승객들 중 최고의 인기인이 된다.
그렇게 영국에 도착해 할아버지와 처음 만나게 된 세드릭. 늘 사랑만 받고 자랐던 세드릭은 할아버지도 당연히 자신을 좋아할 거라 생각하며 그에게 친근히 대한다. 그런 세드릭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도린코트 백작은 생각 이상으로 아름답고 예의 바른 손자를 보며 내심 흡족해한다.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지만 남에게 전혀 베풀지 않는 성정으로 인해 많은 미움을 받고 있던 백작은 사랑하는 손주의 말 한마디에 소작료를 내지 못한 하긴스를 도와준다. 세드릭은 그 이후에도 사람들을 도와달라며 부탁을 하고 백작은 기꺼이 그 말을 들어준다. 백작의 급작스러운 변화에 사람들은 크게 놀란다.
정작 사람들에겐 아무런 관심도 없던 백작은 자신의 손자가 소작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을 보며 흡족해한다. 하지만 순수한 손자가 “저는 할아버지 같은 백작이 되고 싶어요.” 라고 하는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깊은 생각에 잠긴다. 본인 스스로도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복한 시절도 잠시, 어느 날 자신이 도린코트 백작가의 후계자라고 주장하는 아이가 나타난다. 에롤 대위의 형 베비스가 아들을 한 명 두었는데, 그 아들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영국을 넘어 미국까지 퍼져나가고 백작은 크게 흥분하며 자식에 대한 뼈아픈 실망감에 화를 낸다.
세드릭은 후계자가 되지 못하면 할아버지의 아이도 되지 못할까 걱정하지만, “너는 영원히 나의 아이다”라는 백작에 말에 그럼 자신은 후계자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며 기뻐한다.
도저히 새로 나타난 후계자를 용납할 수 없던 백작은 그토록 미워하던 세드릭의 어머니를 찾아가 오해를 풀고 세드릭의 권리를 되찾겠다는 굳은 다짐을 한다. 이미 백작은 세드릭을 후계자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손자로서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때마침 미국에서 소식을 들은 세드릭의 오랜 친구 ‘구두닦이 딕’과 ‘식료품 가게 주인 홉스’는 이 사실에 분개하며 그 후계자가 가짜라는 것을 밝혀내고 세드릭을 보기 위해 영국으로 향한다. 그렇게 많은 이들의 도움을 통해 후계자 자리를 되찾게 된 세드릭은 사랑하는 이들과 행복하게 살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내가 어린 시절 이 책을 가장 좋아했던 이유는 세드릭이 결점이 없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외모에, 상냥하고 다정한 성격을 지닌 완벽한 소년을 보면 ‘세상에 저렇게 착하기만 한 아이가 어디 있어?’ 하는 생각까지 든다. 어쩌면 세드릭은 어른이 된 뒤에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고 정의로운 곳이 아니며, 선의를 베푼다고 해서 꼭 선의가 되돌아오는 법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가 감동적인 건 모든 사람에게 진심을 다하는 세드릭을 보면 잊고 있던 삶의 미덕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착한 면과 악한 면을 다 가지고 있다. 어떤 것에 중점을 두고 살아가느냐는 본인의 선택이다. 그러나 이기심과 욕심에 찌들어 사는 것보단 자신의 것을 나누고 베풀며 살아가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우린 알고 있다. 세드릭은 도린코트 백작을 통해 이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도린코트 백작은 성질 사납고 이기적이고 자기만 아는 사람으로 한 평생을 살았다. 친척들과의 관계는 당연히 좋지 않았고 자식과의 관계는 더더욱 좋지 않았다. 모든 자식들을 병이나, 사고로 먼저 보낸 뒤에도 그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 믿어주고 신뢰하는 세드릭을 만나며 백작은 진심으로 세드릭을 아끼고 사랑하게 된다. 나눔을 통한 기쁨이 무엇인지, 사람과 함께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된 백작은 더 이상 외롭지 않아 보였다.
세드릭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러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진실된 사랑이고, 사람을 대하는 진실한 마음이야말로 진정 귀족다운 품위다.”
[헤모라이프 안지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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