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래. 벌써 또 동지가 왔구나’

해그린달 “이맘때쯤 당신에게 필요한 영상 ver.11월”

유성연 기자 승인 2020.11.20 11:30 의견 0

오늘, 아침에 출근을 하던 중 잘 다니던 칼국수 집 앞에서 그리운 문구를 발견했다. 

‘동지 팥죽 시작합니다.’ 

‘아. 그래. 벌써 또 동지가 왔구나. 겨울을 날 준비를 해야겠구나.’

유달리 팥죽을 좋아하는 엄마는 자식들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매년 동지마자 새알심이 들어간 팥죽을 한 가득 쑤어 택배로 보내곤 했다. 번거롭게 한 그릇 사 먹으면 7000원이면 될 일을 왜 매년 하시냐고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고, 자식들이 나이가 들어도 손수 쑨 팥죽 한 그릇을 먹여야만 내년에 올 액운을 피해갈 수 있을 것이라는 나의 엄마의 믿음. 그 믿음을 저버릴 수 없어 나와 형제들은 매해 먼 타지에서도 엄마가 쑨 팥죽을 먹곤 했다. 11월은 바로 그런 내년의 액운을 막는 팥죽을 먹으며 이제 두어 달 남짓 남은 올해를 추억하는 달이다. 그리고 내년 다시 봄이 올 때까지 어떻게 겨울을 나야할지 고민하는 달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11월에는 마음이 차분해진다. 12월에는 친구들이며 지인들을 모아 시끄럽게 놀아야 할 것 같지만 11월은 조용히 ‘집순이’가 되고 싶은 달이랄까? 이런 마음이 비단 나 뿐은 아닌 것이 예로부터 11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겨우살이 준비를 하는 달이었다고 한다. 짚으로 이엉을 엮어 초가지붕을 얻고 농기구를 마련하고 겨우내 쓸 땔감도 마무리해야 한다. 베를 짜고 메주를 쑤고 장을 담그고, 감을 따서 곶감을 만들기 위해 널기까지. 시골의 겨우나기 풍경이 문득 보고 싶고 떠오르는 그런 날이었다.  

‘이맘때쯤 당신에게 필요한 영상’ 어쩌면 이 제목 하나가 마음을 끌었다. 집에서 작은 난로 하나 틀어놓고, 이불 덮고, 조금은 이르게 산 신 귤을 사서 까먹으며 따뜻하게 지내고 싶은 날의 풍경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잔잔한 일상을 찍어 올리는 이런 브이로그 영상이 적지 않음에도 유달리 ‘해그린달’ 채널의 영상들은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영상 안에는 11월에 하고 싶고, 왠지 그리워지는 그런 모든 풍경이 있었다. 이제 조금씩 겨울 티가 나는 낙엽이며 단풍, 무를 뽑아 김장을 준비하는 풍경, 아직 못 거둬들인 작물이 없는지 밭을 서성이면서 마저 파를 뽑아 정리하는 풍경, 갖가지 우리의 11월이 영상 가득 담겨져 있었다. 

문득 웃음이 나는 모습들에 나도 모르게 인자한 미소를 띄고 영상을 한참 바라보았다. 아직 겨울이 오지 않았다고 말하며 급히 이번 겨울에 꼭 맬 수 있을 것이라며 목도리 뜨개질을 하기 시작하기도 한다. 김장을 하는 엄마 옆에서 언제쯤 끝나 나에게 수육을 삶아주실지 기다리기도 했다. 무를 뽑아 빨랫줄 가득 무청을 널어 시레기를 만드는 풍경에 ‘아. 어릴 적에도 그랬지.’ 라면서 바라보았다.

늘 수육을 가마솥 마당에서 삶던 우리 엄마는 고구마며 감자를 이 영상 속 풍경처럼 은박지에 싸서 아궁이에 넣어 구워주시곤 했다. 

어쩌면 이렇게 그리운 것들뿐일까. 어쩜 내가 기억하는 겨울의 풍경은 11월이 거의 전부인 것 같기도 하다. 막상 겨울이 오면 춥다는 말을 하며 바쁘게 길거리를 활보하기 바쁜데 말이다. 11월은 아직 바깥에서 김장을 하고, 수육을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정도의 여유는 남아있기 때문 아닐까? 

촌스러움이 가득한 영상이었다. 하지만 그 촌스러움이 나의 가족,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게 만들곤 한다. 그래서 오랜만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영상이었다. 

유튜버월드 유성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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