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를 좋아한다. 중고등 교과서에 쓰여진 고전시부터, 현대시까지. 시를 읽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의 파동이 좋다. 그래서 학생시절엔 점심시간만 되면 후다닥 밥을 먹고 도서관으로 달려가 시집을 읽곤 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 있었는데 바로 <류시화> 시인이다.
“날개를 주웠다, 내 날개였다.”
단 한 줄로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게 하는 마법. 언제나 시는, 나에게 그런 특별한 마법을 선사했다. 오늘 소개할 시는 류시화 시인이 엮은 <마음 챙김의 시>에 나온 “나오미 쉬하브 나이”의 시다. 그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를 둔 시인이다.
제목은 <탑승구 A4>
내가 탈 비행기가 4시간 지연되었다는 걸 알고 앨버커키 공항 안을 돌아다니는데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탑승구 A4 근처에 아랍어를 할 줄 아는 분이 계시면 지금 곧 탑승구 A4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세상이니만큼 잠시 망설여졌다. A4는 내가 탈 탑승구였기에, 나는 그곳으로 갔다. 우리 할머니가 입으시던 것과 똑같은 팔레스타인 전통의 수놓은 옷을 입은 나이 든 여인이 바닥에 주저앉아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항공사 직원이 말했다. ‘도와주세요, 저분에게 물어봐 주세요, 무엇이 문제인지. 비행기가 지연되었다고 하자 저러시거든요.’ 나는 몸을 굽혀 한쪽 팔로 여인을 감싸 안으며 더듬거리는 아랍어로 말했다.
‘슈-다우-아, 슈-비드-우크 하빕티? 스타니 슈웨이, 민 파들리크, 슈-빗체-위,’ 형편없는 실력이었지만, 자신이 아는 단어들을 듣는 순간 그녀는 울음을 그쳤다. 그녀는 자신이 탈 비행기가 완전히 취소된 줄 알고 있었다. 중요한 치료를 받으러 무슨 일이 있어도 다음 날 엘패소에 있어야만 했다. 내가 말했다.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조금 늦어진 것뿐이지, 곧 엘패소에 가실 수 있어요. 공항에는 누가 마중 나와요? 그 사람에게 전화해 볼까요?’
우리는 그녀의 아들에게 전화해서, 내가 그와 영어로 얘기했다. 비행기를 탈 때까지 내가 그의 어머니와 함께 있을 것이며, 비행기 안에서도 옆자리에 앉을 것이라고. 그녀도 아들과 통화했다. 그런 뒤 우리는 그녀의 다른 아들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저 재미 삼아. 그런 다음 나는 나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고, 아버지와 그녀는 얼마 동안 아랍어로 통화했다. 당연히 두 사람이 서로 아는 친구를 열 명이나 찾아냈다!
내친김에 내가 아는 몇몇 팔레스타인 시인에게 전화해 그녀와 통하하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 모든 통화가 끝나는데 두 시간 넘게 걸렸다. 이제 그녀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했다. 자신의 삶을 들려주고, 내 무릎을 토닥이고 내 질문에 답을 해주면서.
그녀는 문득 가방을 열어 집에서 직접 만든, 대추와 견화류를 안에 넣고 겉에 설탕 가루를 입힌, 둥근 모양의 잘 바스러지는 마물 쿠키가 든 봉지를 꺼내 탑승구에 있는 모든 여자에게 권했다. 놀랍게도 단 한 명도 거절하지 않았다. 마치 성당의 성찬식 같았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여행자, 캘리포니아에서 온 엄마, 라레도에서 온 사랑스러운 여성.
우리 모두 설탕 가루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웃고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은 과자는 세상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 항공사 측이 커다란 냉장 박스에서 사과주스를 꺼내 무상으로 제공해 주었고, 우리 비행기에 탈 어린 소녀 둘이 사람들에게 주스를 날라 주느라 바쁘게 뛰어다녔다. 소녀들 역시 설탕 가루 범벅이었다. 나는 줄곧 새로 생긴 내 절친과 손을 잡고 있었는데, 그녀의 가방에서 화분에 심은, 초록색 잎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약용 식물 하나가 빠져나온 것이 보였다. 얼마나 오랜 시골 전통인가. 언제나 식물을 가지고 다닌다. 언제나 어디엔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나는 탑승구 주위에 앉아있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이 바로 이런 세상이라고. 함께하는 세상. 일단 혼란스러운 울음이 멎은 후에는 그 탑승구에 있는 사람들 중에 옆의 다른 사람에 대해 불안해하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쿠키를 받아먹었다. 나는 다른 모든 여자들까지 안아 주고 싶었다.
이런 일은 아직 어디에나 일어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잃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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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다 보면 눈앞에 이 모든 상황이 그대로 펼쳐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두려움에 눈물을 터뜨리는 할머니를 달래고, 그 할머니가 직접 만든 과자를 나누어 먹으며 환한 미소를 짓는 시간. 어느새 불안은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오는 그 순간. 이 모든 여정을 함께한 기분이 들기에 이 시가 더 좋은 것 같다.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사는 “함께하는 세상”이 찾아오면 얼마나 좋을까. 혼란스러운 울음이 멎은 후 온기를 내어주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선의가 똑같은 선의로 되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용기 내어 손을 내민다면, 그리하여 나로 인해 웃는 사람이 생긴다면....참 좋을 것 같다.
오늘도 어제보다 더 나은 세상이 되길 바라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을 쓰며 이 글을 마친다.
“우리 모두 설탕 가루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웃고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은 과자는 세상에 없었다.”
[안지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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